한국은 성급한 문화이고 일본은 겉치레 문화여서 차이나는 것들
한국사람은 급하다. 물론 급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성급하다. 그래서 빨리빨리에 익숙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반면에 일본은 왠만해서는 집안으로 사람을 초대하지 않는다. 밖에서 만난다. 그 이유는 집안을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잘 길들여진 겉치레 문화이기에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라는 작품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1. 가을에 진하게 수놓는 국화향기
국화는 희고 노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색깔이 있고, 향기는 지독할만큼 진하고 오랜동안 은은하게 남아있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에서 국화는 일본 천황가문을 의미한다. 천황가문은 어떻게 태어나서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마감하는가? 그것은 마치 사람앞에 잘 다듬어 내놓은 국화와 같다는 말이다. 같은 사무실에 있는 박교수의 의견에 의하면 해석이 참 남다르다.
- 국화는 들에 있는 국화가 아니라 다듬어진 정원의 국화는 천황가문의 모습이다. 천황가문은 태어나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길들여진다. 그래서 개인에게 자유가 없다. 자유가 없지만, 프레임 속에서 만들어진 의지로 누리는 자유를 가진다. 틀 속에 갇힌 의지를 가진 존재로서의 자유를 누린다는 의미다. 마치 가꾸진 국화처럼. 국화가 예쁘게 보이기 위해 그 이면에는 철사로 잘 붙들어 맨 것과 같다는 말이다. 일본인의 겉치레가 바로 이런 모습일 수도 있다. 집안은 엉망이라 해도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인 것이다. 보는 앞에서는 끝까지 친절을 보이는 모습과도 같다.
2. 칼은 사무라이의 상징물이자 정신
칼은 일본의 상징, 사무라이라고 할 수 있다. 사무라이에게 있어 칼의 의미는 긴장이고, 갈고 닥는 것이며, 마음의 수양이고, 정신을 차리는 도구다. 국화와 칼에서 칼은 사무라이라기보다는 몸과 마음의 수양이고, 항상 갈고닦는 일본인을 상징한다. 이것은 일본인들의 국민성일 수 있다. 전쟁에서 이기든 지든 상관없이 항상 미래를 준비하며 심신을 수양하고 수련하는 자세를 가지고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무시무시한 말이다. 항복을 했다고 해서 항복한 것이 아니요, 이겼다고 해서 자만하지 않는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국민성이고, 양면성이라할 만하다.
3. 한국인들이 독서를 못하는 이유
한국인들은 독서를 얼마나 할까? 선진국 중에서는 거의 최하위가 아닐까? 읽고 쓰는 문해력은 세계 최고일 수도 있는데, 독서력은 왜이럴까? 이런 독서력으로 노벨상을 생각한다는 것은 아마 잘못된 생각임이 분명하다. 이렇듯 한국인이 독서를 못하는 이유, 아니 독서를 안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쩌면 국민성인지도 모른다. 한국인은 성격이 성급한 편이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상당히 급해다. 그것이 빨리빨리의 국민성을 가진 것이고, 그것이 어느 정도 부작용은 있다 해도 정보통신 분야에서 세계1위 표준이 되고 있다. 한국인의 양면성이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견냥한다면, 독서와 토론문화가 성숙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 한국의 미래는 독서에 달렸다. 노벨상이 많이 나오려면 독서와 토론이 관건이다. 책을 다독을 할 줄은 알아도 곱씹을 줄 모른다. 역사를 보더라도 다독하여 성공한 이는 드물지만, 곱씹어서 성공한 대가들은 많다. 대충 읽으면 그것이 머리에도 들어오지 않고, 들어와도 이내 나가버린다는 말이다. 세종대왕이나 정조는 조선의 태평성대의 주역들이다. 모두 책을 가까이 햇고, 토론을 즐겼다. 퇴계선생이나 율곡선생이 그렇고, 이덕무나 김득신이 그렇다. 우리의 미래는 부모부터 책을 읽고, 낭독하고, 토론하는 것이다. 그러면 2세들은 저절로 급한 마음을 다스리고 독서와 토론을 즐겁게 할 수 있지 않을까?
- 덕분에 감사합니다. 천면행복을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