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356년 필리포스2세와 올림피아스 사이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 마케도니아(그리스북부) 왕이 된 알랙산더 대왕. 16세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치을 받았고, 세계를 재패하고자 했다. 그러나 어머니가 아들을 왕으로 삼기 위해 살해했다는 누명을 죽을 때(BC323)까지 가지고 가게 되고, 32세의 어린 나이에 인도의 열사병으로 사망한다.
1. 공격적인 정복 야욕을 불태우다
알렉산더는 알렉산드로스3세를 지칭한다. 고대 그리스의 북쪽 마케도니아 왕국의 필리포스2세의 아들이다. 어릴 때부터 군사적인 용맹스러움을 가지고 있었고, 아버지보다 더 호전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전해진다. 다만 얼굴은잘 생긴 편인지 모르지만, 키는 152cm로 아주 작은 편이었다.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 얕보고 반란을 일으킨 동맹국 테베국을 정복하고, 페르시아의 아케메네스를 정복하여 페르시아를 장악하고 이집트까지 정복하였다.
2. 토착문화를 수용하고 인권존중하다
알렉산더는 특히 페리시아 당시 다리우스3세와 다양한 전투를 하고 정복하였다. 그러나 다리우스 3세와 완비, 공주를 죽이지 않앗고, 그 넒은 영토의 모든 문화를 수용하고 인권을 존중하였다. 이로 인해 나타난 동서문화의 활발한 교류로 헬레니즘 문화를 만들어냈다. 그리스, 이집트, 파키스탄, 인도에 이르기까지 토속 문화를 그대로 인정한 것은 위대한 업적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알렉산더는 어떤 점이 위대한가? 내가 생각하기엔 정복하고 난 후 정복민에게 군사일까지 맡길 정도로 인권을 존중했다믄 점이다. 정복을 당하면 더 핍박을 받을 것으로 알았는데, 오히려 정복당한 후가 더 살기좋아졌다는 평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정복자로서는 유일하게 알렉산더였던 것이다.
3. 알렉산더의 약점도 만만하지 않다
청소년 시절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시고 학문을 한 것은 평생동안 통치의 힘으로 작용햇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애첩에게 아리스토텔레스를 희롱하라고 지시하였는데, 아리스토텔레스도 여자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크게 실망하였고, 이후 동성애자가 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인도에서 참모들의 반대로 결국 완전정복을 하지 못하고 돌아왔는데, 오히려 잘한 결과가 되었다. 천천히 돌아올 줄 알았던 본궁의 귀족들은 부정축재를 일삼고 있어 이를 처단하려 했지만, 일부 외에는 모두 용서하기 이른다.
* 인도 원정은 만만치 않았다. 고온다습하여 오래 머물기 어려운데다, 코딱지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끝없이 넓고 인구가 많아 통치자체도 만만하지 않았다. 알렉산더는 32세에 인도에서 얻은 열병으로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특히 그에게 배울 것이 있다면 용감하고 두둑한 배짱이 있었다는 것, 소신있게 모든 전쟁에서 선봉장이 되어 앞장을 섰다는 점이다. 물욕이 전혀 없다는 점, 여성들을 제대로 칭찬할 줄 알았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술도 워낙 좋아하여 술에 취한 상태로 가장아끼던 심복으로 친구인 장군을 죽인 것은 큰 오점의 하나이다. (나무위키 참조)
- 감사합니다. 천년을 행복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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